시와글 감상/신문 좋은글

보리수/광주일보

무명화 2014. 3. 23. 09:40

(보리수 나무)

 

보리수

홍행기
(경제부장)

 

인류는 아득한 고대부터 나무를 숭배해 왔다. 나무는 인류 탄생 이전부터 존재해 왔고, 그 무엇보다도 오래 살며, 하늘과 가장 가깝게 닿아 있는 생물체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 거대한 존재는 당연히 경외의 대상이었다.

 

사람들은 지하의 심연에 뿌리를 내리고 청명한 하늘에 가지를 늘어뜨려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나무를 ‘신과 예언자의 통로’ 또는 ‘신비의 사다리’로 여겨 왔다. 이런 이유로, 세계 각지에는 세계수(世界樹) 또는 우주목(宇宙木)으로 불리며 숭배를 받는 나무들이 적지 않다.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위그드라실( Yggdrasil)은 ‘신들의 아버지’ 오딘(Odin)이 심었다는 거대한 물푸레나무로, 가장 유명한 세계수 가운데 하나다. 창세기 에덴동산 한가운데 서 있었다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에리두 지역 신화에 나오는 ‘키스카누’ 그리고 중국 도광(都廣) 들판에 높이 솟아 있다는 건목(建木)도 대표적인 우주목이다. 우리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3000명의 무리를 이끌고 처음 하늘에서 내려와 그 밑에 섰다는 신단수(神檀樹)도 세계수의 범주에 포함된다.

 

인도에는 세계에서 가장 성스러운 우주목이 존재한다. 바로 보리수(菩提樹)다. 부처가 보드가야에 자리 잡은 이 나무 밑에 풀을 깔고 앉아 성불(成佛)했다. ‘우주를 뒤흔든’ 부처의 득도 순간을 함께하면서 ‘불교의 상징’이 된 보리수이지만, 이 후엔 순탄치 않은 길을 걷는다.

6세기 말, 불교를 박해했던 벵골의 왕 카산카는 이 나무를 불태우고 뿌리에 사탕수수즙을 뿌려 영원한 소멸을 시도한다. 그럼에도 싹을 틔워 새 생명을 이어가던 보리수는 1876년엔 벼락을 맞고 쓰러지지만 세계수답게 또다시 부활, 지금은 2500년 전 그때 그 자리에서 무성한 가지를 자랑하고 있다.

 

최근 인도 정부가 부처 득도 당시 주변에 있던 보리수의 ‘직계 후손’ 묘목 한 그루를 한국에 보내왔다. 7개월가량 자라 키가 50㎝ 정도에 불과하지만 부처의 성불을 지켜본 보리수의 DNA를 이어받았다는 점에서 오리지널이나 다름없는 세계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화에만 존재해 온 나무들과는 달리 ‘실존하는’ 세계수라고 생각하니 더욱 특별한 느낌이다.

 

출저 : 광주일보/무등고

 

    (보리수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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