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현(先賢)들 가운데 가장 많은 동상의 주인공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일 것이다. 장군의 동상은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해남 땅끝 울돌목까지 전국 주요 장소에 세워져 있다. 심지어 초등학교 교정에까지 자리잡고 있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충무공 동상이 세워진 곳은 진해 군항제가 열리는 경남 창원이었다. 1952년 4월 13일 창원시 진해구 도천동 북원 로터리에 세워진 국내 1호 충무공 동상 제막식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참석했다.
가장 상징적인 충무공 동상은 서울 한복판인 광화문 사거리에 있다. 1968년 4월 27일 전체 높이 17m(동상 6.5m, 기단 10.5m)의 청동 입상 형태로 건립됐다. 광화문 사거리에 자리 잡게 된 것은 풍수지리적인 측면에서였다. 세종로와 태평로가 뻥 뚫려 있어 남쪽 일본의 기운이 너무 강하게 들어오는데 이를 억누를 필요가 있었다. 일본이 가장 무서워 할 인물로 왜적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만 한 사람이 없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의 얼굴이 통일된 것은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이 충무공 동상을 통일된 영정에 의해 세우도록 지시하면서부터다. 이후로는 현충사에 봉안돼 있던 월전 장우성 화백의 충무공 영정이 기본 모델이 됐다.
전남도가 파악하고 있는 도내 충무공 동상은 6개다. 진남관 밑 로터리와 자산공원 등 여수에 2개, 목포 유달산, 강진 금강사, 울돌목을 사이에 두고 해남 우수영과 진도 벽파진에 1개씩이 있다.
명량해전의 무대인 울돌목에 있는 2개의 동상은 국내 기록을 가지고 있다. 진도 벽파진 동상은 높이 30m로 충무공 동상 중 최대 규모다. 일명 ‘지휘하는 이순신’으로 오른손을 치켜든 모습이 왜구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만큼 위압적이다.
해남 우수영 동상은 실물에 가까운 2m 크기로 국내에서 가장 작다. 갑옷과 칼 대신 도포를 입고 지도를 든 유일한 동상으로 인간적인 모습이다. 해남군이 이 동상을 ‘명량의 고뇌하는 이순신 상’이란 이름으로 상표 등록했다. 충무공 동상으로는 상표 등록이 처음이라고 한다. 진도대교를 오갈 때 두 곳의 충무공 동상을 비교 감상하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