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이야기
이홍재(논설고문)
호(號)는 편하게 부를 수 있도록 지은 이름이다. 대부분 거처하는 곳이나 자신이 지향하는 뜻, 존경하는 선배의 호나 좋아하는 물건에서 따온 경우가 많았다. 퇴계(退溪)·율곡(栗谷) 등은 자신이 학문을 배우고 가르친 곳을 호로 삼은 경우다.
공초(空超) 오상순은 하루 2백 개비의 담배를 피워대는 애연가였기에 ‘꽁초’나 ‘골초’와 발음이 비슷한 호를 택했다. 염상섭의 횡보(橫步)는 언제나 술에 취해 게걸음을 한다 해서 동료가 붙여준 호다.
김해경의 호 이상(李箱)은 공사현장에서 동료 인부가 성을 잘못 알고 ‘리상’(李氏)이라 부른 데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육사(陸史)란 호를 가진 이활은 감옥에 있을 때 죄수 번호가 64번이었다.
‘북쪽엔 소월 남쪽엔 목월’이란 찬사를 들었던 박영종은 스스로 필명을 목월(木月)로 지었다. 그가 좋아했던 수주 변영로의 호에서 ‘수’(樹) 자에 포함된 ‘목’(木)과 김정식의 호 소월(素月)에서 ‘월’(月)을 따 지은 것이다. 경기도 부천 출신인 변영로는 부천의 옛 행정 명칭인 수주(樹州)에서 호를 따왔다.
천재 화가 김홍도는 단원(檀園)이라는 호를 30대 중반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명나라 화가 이유방의 호에서 따온 것이다. 김홍도가 스승으로부터 그림과 글씨를 배운 곳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 바로 경기도 안산이다. 안산시에 단원구(檀園區)가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많은 학생이 희생된 단원고도 바로 그곳에 있다.
노동자 출신 시인 박노해(57)의 본명은 박기평이다. 그의 호 ’노해는 ‘노동 해방’을 줄여서 만든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난 지 벌써 한 달이 됐는데 그의 시 ‘이별은 차마 못했네’가 또 심금을 울린다.
이별은 차마 못했네
박노해
사랑은 했는데
이별은 못했네
사랑할 줄을 알았는데
내 사랑 잘 가라고
미안하다고 고마웠다고
참 이별은 못했네
이별도 못한 내 사랑
지금 어디를 떠돌고 있는지
길을 잃고 우는 미아 별처럼
어느 허공에 깜박이고 있는지
사랑은 했는데
이별은 못했네
사랑도 다 못했는데
이별은 차마 못하겠네
웃다가도 잊다가도
홀로 고요한 시간이면
스치듯 가슴을 베고 살아오는
가여운 내 사랑
시린 별로 내 안에 떠도는
이별 없는 내 사랑
안녕 없는 내 사랑
출저:광주일보/무등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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